인터넷으로 총학선거를 할 수 있을까? Etc.

 얼마 전 학교에서 총학생회장 선거가 무산되었다. 총학 회칙에 따르면 재적회원 과반수가 투표를 해야만 선거가 성사되는데, 마감 기한을 여러 차례 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48.738%의 투표율을 기록해 결국 무산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마음에 드는 후보가 아무도 없어서 일부러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추운 날씨에 떨며 투표소를 지켰던 사람들의 고생을 생각해보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어떻게든 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투표하셨나요?'를 물어보기도 하고, 하루 한 번씩 투표 독려 문자나 전화도 왔었고. 하지만 1.26%의 근소한 차이로 결국 투표도 무산되고, 투표소를 지켰던 사람들의 고생도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인터넷으로도 총학 선거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의제 방식에서 절차를 개선하여 보다 많은 사람이 투표를 하게 만든다면, 집단의 의사를 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여 추후 행보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활용해 보다 투표 과정을 편리하게 만든다면(꼭 전면적으로 인터넷 선거를 도입하지 않아도 병행하는 방법도 있다), 일부러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을 제외하더라라도 투표율을 높이고, 후보들의 의견을 보다 쉽게 전달하고, 학생들의 의견 수렴 또한 보다 원활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별도의 개표 과정이 필요하지 않으며 정확하고 신속하게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기표의 문제로 인한 무효표 방지도 가능하다. 그리고 대표자를 뽑는 선거 뿐만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의견을 묻는 창구(직접민주제적 요소)로도 활용할 수 있다.


 2000년 3월 있었던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지명을 위한 애리조나주 예비선거에서는 인터넷 투표를 통해 투표율을 무려 676%나 끌어올렸으며, 영국에서도 지방선거 때 일부 지역에서 전자 투표를 도입한 사례가 있다(기사 참조). 또 IT 인프라가 잘 갖춰진 에스토니아에서는 세계 최초로 공식 선거를 인터넷 투표로 진행하여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도 기존 투표소 설치 방식 뿐만 아니라 모바일 투표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블로그 참조

 분명 인터넷 선거를 시행하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있다. 우선 선거의 4대 원칙(보통·평등·직접·비밀) 중에서 비밀 선거와 직접 선거의 원칙을 훼손시킬 위험이 있다. 먼저 비밀 선거에 대해서 살펴보자. 암호화 등을 통해 투표자가 누구를 찍었는지를 감춘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투표를 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기록이 남기 때문에 밝혀질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게다가 내부나 외부의 해킹이나 조작 위험과 같은 보안 문제도 있다.  또, 본인 인증을 현행 방식(투표소에 가서 신분증과 얼굴을 대조하고 투표하러 가는 방식)에 비해 수행하기 힘든 측면이 있기 때문에 대리선거를 통한 직접선거 원칙의 훼손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또, 정보 격차로 인해 인터넷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선거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불편함을 겪을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직 전면적으로 국가적인 단위의 투표에서 인터넷 투표를 도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라는 공간으로 좁힌다면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학교라는 공간은 공개선거로 인한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때문에 비밀 선거의 중요성이 떨어진다. 보안 문제가 발생할 위험은 있지만 절차나 기술적인 개선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으며, 기존의 방식보다 위험하다는 건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른다. 기존 방식에서는 투 개표 인원의 조직적 움직음으로 조작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신문 기사 참조). 그리고, 모든 학생이 정보화포털에 1인 1계정을 가지고 있고, 수강신청을 비롯한 모든 학사행정이 웹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보 격차 문제가 없으며, 이러한 인프라가 갖추어진 상황에서 인터넷 선거를 위해 추가적으로 들여야 할 비용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러한 위험 요소보다는 인터넷 투표 도입을 통한 이익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도입을 위해서는 실제 시행되고 있는 많은 사례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Goodvoting에서는 초중고 정부회장 선거를 전자투표로 수행하고 있는데(http://www.goodvoting.com/, 샘플), 인터넷을 이용한 사례는 아니지만 참고할만한 요소가 꽤 있다. 2006년 한남대(기사), 2007년 숭실대(기사)에서도 전자 투표소를 통해 총학선거를 수행했으며, 2011년 3월에 중앙대 안성캠퍼스에서는 투표소 없이 총학선거가 인터넷으로만 수행되었다(기사). 중앙대 안성캠퍼스에서는 2년 전 선거 과열로 한 후보가 투표함을 탈취하는 등 말썽이 일어 이와 같은 방식의 투표를 도입했다. 투표의 경우에는 학교 종합정보시스템에 로그인한 뒤 전자메일로 받은 인증번호를 입력해 투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컴퓨터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등 인터넷이 가능한 곳이면 어디서든지 투표할 수 있는 방식이었는데, 동일 시간에 하나의 IP에서 여러 학생이 투표한 흔적이 발견되는 등 부정선거 의심 사례가 접수될 경우 즉시 학생지원처에 통보되었다. 실제로 단 1건의 부정 사례도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투표는 깨끗하게 진행되었다. 이후 시립대(기존 방식+스마트폰→ 이틀만에 투표율 55% 달성), 연세대(후보자 대담 인터넷 생중계), 홍익대(총학생회 선거 스마트폰 생중계), 경희대 대학원(종이+이메일+모바일 투표 병행)에서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활용한 선거를 진행했다.(기사 참조) 매년 선거철마다 홍역을 앓고 있는 우리 학교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추가적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인터넷을 통한 의사 결정에 대한 내용이다. 선거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컴퓨터나 모바일 화면으로 옮겨가면서, 우리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선거에 접근하게 될 확률이 무척 높기 때문이다. 투표 화면이 어떻게 제시되느냐에 따라서 공약에 대한 깊은 생각보다는 시각적인 것에 의해 득표율이 좌지우지 될 가능성도 있다. 또, 투표소에 가서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한다는 그러한 느낌이 없어지면서, 마구잡이로 표를 찍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장점은 최대한 살리되 여기서 언급한 단점들을 어떻게 보완할지를 생각해야, 인터넷 투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지 않을까?

덧글

  • 캐슈넛 2011/12/08 01:35 # 답글

    문제의식/장단점/보완방법/사례까지 잘 읽히게 풀어내 주셨네요. 졸업한지 꽤 되어 잊고있던 문제였는데, 흥미롭게 읽고갑니다.
  • 크런키 2011/12/08 10:17 #

    감사합니다. 학교 다니면서 잠깐 든 생각을 확장해본거라 논리적 허점이 많을까 걱정했었는데, 흥미롭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 언제든 추가적인 아이디어나 비판할 점이 있으면 와서 남겨주세요! 이런 주제는 많이 이야기하면 할수록 더 발전되기 마련이니까요~
  • 2011/12/08 01: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크런키 2011/12/08 10:19 #

    상당히 투표율이 높은 편이었네요ㅠ 우리 학교는 소규모 과 회장선거가 아니면 저런 투표율을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IT는 사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우리를 도와주는 도구가 될 수 있으니 조금씩 작은 선거에서부터라도 시도해보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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